생리컵으로 ‘다시 만난 세계’

Posted by 병아리콩
생리컵으로 ‘다시 만난 세계’

 내 주변의 생리 나기 트렌드는 급격하게 바뀌었다. 몇 년 사이에 우리가 사용하는 생리용품이 탐폰, 면생리대, 생리컵 등으로 다양화되었다. 그만큼 우리가 생리에 대해 나누는 이야기도 다양해졌다. 모두가 패드를 쓰던 시절에는 그저 굴 낳는 느낌이 얼마나 불쾌한지 떠들었다. 또는 어느 생리대가 얼마나 얇아서 티가 덜 나는지 이야기했다. 이제는 어떤 형태의 어떤 제품이 내 몸에 맞고 사용하기 편한지에 대해 이야기한다. 20살 여름, 탐폰을 끼는 것이 무서워 친구들과 함께 워터파크에 가길 포기해야만 했던 한 친구는 이제 탐폰의 편리함을 전도한다. 대형 여성 커뮤니티의 회원인 다른 친구는 일찌감치 여러 종류의 생리컵을 해외배송으로 직접 구매해 사용해보고 내가 생리컵을 구매하는 데 도움을 주었다. 물론 아직까지 패드형 생리대를 고집하는 친구들도 있다. 이 또한 그의 취향이다. 분명한 것은 우리는 생리혈을 받아내기 위한 다양한 형태의 제품을 만났다는 것이다. 경험이 다양해지니 주고받는 이야기도 풍부해졌다. 이런 와중에 화제의 중심에 있는 것은 단연 생리컵이다.


 

 초등학교 6학년 5월 첫주에 생리를 시작했으니 벌써 생리 15년차가 되었다. 오로지 패드만 사용했던 10년, 패드와 탐폰을 번갈아가며 사용했던 4년이 억울하지만 지금이나마 생리컵을 만나서 다행이다. 이 기쁨을 나누고 싶어 주변에 생리컵을 자주 추천하는데 늘 반응이 좋은 건 아니다. 내 주변 사람들이 생리컵 사용을 망설이거나 거부하는 가장 큰 이유는 질에 이물질을 넣어야 한다는 두려움이다. (두려움의 원인에 대해서는 할말하않)“저걸 내 질에 넣는다고?” 단순하게 다른 사람들의 질이 하는 걸 내 질이 못할 리 없다고 생각하자. 여러분의 질은 할 수 있다.

 생리컵을 사용하는 시간은 곧 내 몸을 알아가는 시간이다(현재진행형). 생리컵을 사용한 첫날의 일이다. 생리컵을 비울 때가 된 것 같아 피 칠갑이 되어도 상관없는 곳에 자리를 잡았다. 그리고 손가락으로 질 입구를 더듬었다. 생리컵 꼬리가 있어야 한다고 생각했던 곳을 만졌다. 그런데 꼬리가 없었다. 생리컵이 내 손이 닿을 수 없는 깊은 곳으로 들어간 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면서 몸에 오한이 돌았다. 결국엔 찾았다. 꼬리는 있어야 한다고 생각했던 곳이 아니라 실제로 내 질 입구에 얌전히 잘 있었다. 단번에 생리컵 꼬리를 찾지 못한 이유는 내 질 입구가 몸의 정 중앙에서 살짝 왼쪽에 자리하고 있기 때문이다. 이 사실을 그날 ‘처음으로’ 알게 되었다. 내 어깨나 코뼈가 그렇듯이 생식기의 모양도 삐뚤다는 것이 대수롭지 않아야 하는데, 상상조차 하지 못했고 그래서 많이 당황했다. 탐폰을 사용할 때나 질 높이를 재기 위해서 손가락을 넣어봤을 때조차 몰랐던 사실이다. 생식기, 그중에서도 질 구멍의 위치라니. 지금도 정확히 어디에 있는건지는 모르겠다. 하지만 생리컵을 빼낼 때 겪은 시행착오들 덕분에 이제야 내 생식기를 집중해서 만져보게 되었고 그만큼 내 몸을 새롭게 알게 되었다. 

 생리량을 확인하는 것도 재미있다. 지금까지는 그저 양을 가늠해왔을 뿐이다. 컵에 찰랑찰랑하게 담긴 생리혈을 보는 것이 생소하면서 즐겁다. 양이 많은 날 생리컵을 뺄 때의 스릴은 덤이다. 이렇게 단체로(?) 액체 상태인 생리를 본 적이 있던가? 생리컵을 사용하기 이전에는 생리혈이 이미 패드나 탐폰에 스며든 이후라 만져 볼 기회가 없었다. 막연히 더러울 것이라고 생각했기 때문에 만져보고 싶지도 않았다. 나는 생리컵을 세 달 째 사용하면서도 생리컵을 빼내는 게 어려운데 덕분에 매번 손가락에 생리혈을 잔뜩 묻힌다. 느낌은 묽은 콧물과 비슷하다. 별다른 냄새도 없다. 보고 만지는 것이 가능해지니 생리혈에 대한 거리낌도 없어졌다. 무릎이 까져 피가 났을 때는 잘 씻고 약 바를 생각을 하는데 왜 생리는 더럽고 냄새가 날 것이라고 생각해왔을까. 영화 <추격자>에서 4885가 말하는 ‘비린내’ 안 난다. 김훈이 <언니의 폐경>에서 표현한 ‘물고기 냄새’도 없다. 내 몸에서 나온 빨간색 액체일 뿐이다. 손에 묻으면 물로 씻어버리면 그만인 걸 가지고 그간 참 유난을 떨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