페미니즘이라는 코르셋?

Posted by 산낙지
페미니즘이라는 코르셋?

[‘나는 페미니스트는 아니지만증후군]

성차별이 존재하고 여성이 그로 인해 고통 받고 있다는 것을 분명히 알기에 페미니즘의 필요성에는 충분히 동의하지만 페미니스트로 인식되기 싫어하는 경향. 페미니스트라는 표지에 의해 사납고 경직되고 유머 없고 교조적이며 정치적 올바름에 사로잡힌 여성이자 남성혐오적인 레즈비언 이미지로 비춰질까 두려워하는 여성들의 심리상태.

-리샤 터틀, 페미니즘 사전(동문선, 1999), 유혜련·호승희 역, 219. 

 

 본 저널에 본격적으로 글을 기고하기 전, 한 가지 고백할 사실이 있다. 사실 페미니스트인 나에게도 페미니즘은 나를 옥죄어오는 코르셋이라고 느껴지곤 했다.

 

 페미니즘을 접한 지 3, 본 저널에서 페미니즘 세미나를 한 지 6개월. 이 시간 동안 나는 페미니즘과 함께하며 여성에 대한 사회적인 억압부터 일상 속의 사소한 불편함까지 모두 직접 보고 느낄 수 있었다. 그리고 이에 대해 끊임없이 고민하고 성찰하며 더욱 비판적이고 주체적으로 변화할 수 있었다.

 

 그러나 페미니즘으로 인한 변화가 무색하게도 페미니즘과 관련된 글은 좀처럼 써지지 않았다. ‘완경’, ‘성 노동과 같이 평소에 생각한 페미니즘 쟁점이 많았던 터라 글의 주제를 정하기는 어렵지 않았다. 그러나 이상하게도 주제를 잡은 이후부터는 글을 진전해 나갈 수 없었다. 학교 구성원 모두에게 내 글이 공개된다는 사실 그 이상으로의 이유 모를 압박감이 느껴졌기 때문이다. ‘내가 이러한 주제를 논해도 되는가?’라는 자괴감부터 이 글로 인해 후폭풍이 몰아치는 것은 아닐까?’라는 두려움까지. 온갖 부정적인 생각들이 머릿속에 가득해졌고, 때로는 이러한 생각들이 거대한 공포로까지 느껴졌다. 이 때문에 나는 친구에게 끊임없이 내 글을 보여주며 설령 문제가 있는 것은 아닌지 확인받았고, 내 논리가 잘못된 것은 아닌지 계속해서 인터넷에 검색해보았다.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는 도무지 내 글에 확신이 들지 않았다.

 

 수많은 고민 끝에 나는 이러한 부담감의 근원을 알 수 있었다. 이는 바로 우리나라에서의 페미니즘에 대한 인식 그 자체에 있었다. 우선 우리나라에서 페미니즘은 개념 자체가 확고하지 않다. 최근 각종 젠더 이슈로 인해 페미니즘이 화두에 올랐지만, 여전히 우리 사회에서 페미니즘에 대한 논의가 대중적으로 충분히 이루어지지 않은 탓에 페미니즘에 대한 개념이 희미한 상황이다. 그리고 이러한 상황 때문에 우리나라에서는 페미니즘에 대한 오해와 편견이 만연해졌다. 국립국어원에서는 페미니스트를 여성을 숭배하는 사람, 또는 여자에게 친절한 남자라고 정의하며 페미니즘의 개념을 남성 중심의 가부장제적 개념으로 한정 지었고, 인터넷에서는 페미니즘을 여성우월주의와 연관 지으며 페미니즘이 성차별적이라는 편견을 가중했다. 결국, 이러한 무지와 왜곡으로 인해 우리나라에서는 페미니즘에 부정적인 낙인을 부여하게 되었다. 가령 유명 칼럼니스트는 ‘IS보다 무뇌아적 페미니즘이 더 위험하다라는 칼럼을 작성하며 페미니즘을 사회를 어지럽히는 존재로 전락시켰고, 인터넷에서 일부 네티즌들은 페미니즘은 지나치게 기가 세고 과격하다’, ‘페미니스트는 전부 못생기고 뚱뚱한 사회 부적응자이다따위의 글을 통해 페미니스트를 사회에서 배제하려는 움직임을 보였다. 이러한 탓에 수많은 여성은 사회적으로 부정적인 낙인이 찍히지 않기 위해 페미니즘을 회피하는 경향을 보이게 되었다. 외부의 압력에 의해 페미니즘에 대한 이슈를 제대로 논의하지 못하거나, 논의하더라도 상대적으로 온건하고 미약하게 주장하는 데 그치거나, 혹은 논의하는 데 앞서 나는 페미니스트는 아니지만따위의 말을 사용하며 타인의 시선으로부터 자신을 소극적으로 보호하는 것이다.

 

 나 역시 마찬가지로 이러한 상황 때문에 페미니즘에 관한 글을 쓰는 데 어려움을 겪게 되었다. 우선 우리나라에서는 페미니즘의 개념이 확고하지 않고 왜곡되었기 때문에 내가 사명감을 안고 대표로 나서서 페미니즘의 실상은 그렇지 않다며 항변을 해야 한다는 의무감과 페미니즘에 흠집이 가지 않도록 나의 모든 논리가 완벽해야 한다는 강박관념을 가지게 되었다. 그리고 페미니즘이 사회적으로 매우 민감한 문제이기 때문에 페미니즘을 주장하는 데 앞서 다른 사람의 심기를 건드린 것은 아닌가?’, ‘어떻게 전달하면 사람들에게 공격받지 않을 것인가?’ 따위의 생각과 같이 타인의 부정적인 시선에 대한 고민을 항상 지니게 되었다. 또한, 페미니스트로서 한쪽 입장에만 지나치게 치우쳐졌다는 낙인이 두려워 여성과 남성 모두에게 최대한 객관적인 태도를 보여야만 한다는 양비론에 집착하게 되었다. 이러한 생각들은 결국 페미니즘과 이에 대한 내 생각에 대한 끝없는 자기검열과 규제로 이어졌다. 되도록 페미니즘이라는 단어를 사용하지 않았으며, 페미니즘에 대한 타인의 생각을 끊임없이 물어보며 내 생각이 틀리지 않았다는 것을 증명받으려 했고, 나의 모든 것을 내가 생각하는 정석적인 페미니즘에 완전히 일치시키려고 노력했다. 페미니즘이라는 하나의 강압적인 코르셋에 집착한 것이다.

 

 그러나 이윽고 나는 내가 생각했던 페미니즘은 잘못되었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사실은 누구에게도 욕먹지 않을 페미니즘은 허구에 불과하며, 페미니즘에는 정해진 어떠한 답도 없다. 우선 페미니즘은 결점 없이 완벽한 논리만으로 구성된, 특정한 계급 혹은 사람에게만 한정된 것이 아니다. 그리고 그 논리가 모두 개개인의 정체성으로 동일시되어 개인의 생각과 행동을 규제하는 코르셋도 아니다. 또한, 페미니스트이기 때문에 모든 것이 완벽해야 한다는 강박관념이 필요한 것은 더더욱 아니다. 페미니즘은 그저 계급, 인종, 성적 지향 등의 사회적 배제와 더불어, 생물학적 성과 사회문화적 성별로 인해 발생하는 모든 형태의 차별을 없애기 위한 다양한 이론과 정치적 의제들이다. 나 역시 페미니즘이란 지금, 여기, 내가 느끼고 있는 성 평등에 반하는 사소한 불편함에 귀를 기울이는 것에서부터 태동하는, 누구에게나 존재하는 것으로 생각한다. 이를 위해 나는 앞으로 본 저널의 시작과 함께 나를 둘러싸고 있는 페미니즘에 관한 틀에서 벗어나 새롭게 도약할 것이다. 더는 검열받지 않을 페미니즘을 위해 침묵하지 않으며, 완전무결한 페미니즘의 논리에 합치하는 것에 집착하지 않을 것이다. 그저 페미니즘이라는 나의 가치관을 잃지 않은 채 내가 온몸으로 겪고 있는 페미니즘을 알리기 위해 나의 목소리를 크게 낼 것이다. 천천히, 하지만 올곧게 그 방향으로 걸어갈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