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제결혼중개업, 저출산 고령화 대책이라는 폭력

Posted by 우주먼지
국제결혼중개업, 저출산 고령화 대책이라는 폭력

 

"돈만 밝히고 해달라는 것 많은 한국 여자들보다 어리고 착한 베트남 여자 데리고 사는 게 훨씬 낫지." 내가 고등학교 3학년 때 고모가 아빠에게 했던 말이다. 10년 전 엄마가 돌아가신 뒤 아빠는 여러 번 연애도 하고 동거도 했지만 결혼은 '' 했다. 결혼을 안 한 것이 아니라 못 한 것이라고 굳이 강조한 이유가 있다. 할머니는 아빠에게 며느리의 필요성을 강조하곤 했다. "더 늙기 전에 살림하고 돌봐 줄 여자가 있어야 한다"는 논리였다. 딸만 둘인 집에서 늦둥이 아들 하나 낳으면 더 좋으므로 "며느리가 어리면 어릴수록 좋다"는 게 할머니의 바람이었다. 아빠도 할머니의 바람처럼 "집안일 해주는 마누라가 필요하다"고 입버릇처럼 말했지만, 정작 성차별적인 집안의 내막을 알게 된 여성분들이 아빠에게 이별을 고하면서 결혼을 하고 싶어도 '' 한 셈이었다.

 

할머니와 고모는 정부가 앞장서서 농촌총각을 장가보내듯, 쉰 살 홀아비를 기어코 장가보낼 작정이었다. 2011 8월의 어느 날, 할머니와 고모는 아빠 몰래 동네의 결혼이주여성을 통해 21살 베트남 여성을 소개받았다. 결혼 비용으로 비행깃값, 혼수 비용, 중개 비용까지 더해 2000만 원을 요구했다. 뒤늦게 이 사실을 안 아빠도 싫지 않은 눈치였다. 아빠는 "21살이면 너무 어린 거 아니냐"고 말하면서도 입가에는 미소를 띠었다. 결국 아빠는 엄마의 죽음 몫으로 나온 보험금 1000만 원에다 은행권 대출 1000만 원을 얹어 베트남으로 떠났다. 비행기가 뜨던 날 아침 할머니는 "아들 하나 더 낳게 해주시옵소서"라며 아침 기도를 올렸다. 끝까지 결혼을 반대하던 나와 동생은 매매혼으로 똘똘 뭉친 이 가족 안에서 '아빠 인생 조지는 몹쓸 딸년'들이 됐다.

 

그러나 결혼은 이뤄지지 않았다. 소개받은 여성이 알고 보니 21살이 아니라 29살이라는 이유에서다. (당시 아빠의 나이는 50살이었다.) 아빠는 "그 여자 처녀도 아닌 것 같다", 중매를 섰던 동네의 결혼이주여성에게 따져 물었다. (아빠는 물론 총각이 아니다.) 결혼을 반대하던 나와 동생은 "베트남에서 기다리고 있는 그분은 무슨 죄냐"고 따졌지만 아빠는 "2000만 원은 인생 경험이라고 생각하겠다"는 헛소리만을 내뱉을 뿐이었다. 고소는 못 했다. 베트남에서는 영리를 목적으로 한 국제결혼알선 자체가 불법이기 때문이다. 아빠는 베트남에서는 '불법'인 범죄를 저지른 셈이지만 한국에서는 떳떳하게 잘만 산다. 한국 사회는 매매혼을 '국제결혼중개업'이라는 이름으로 합법화하고 있다.

 

이화선은 "한국의 결혼이주여성은 가부장사회에서 여성에 대한 성차별과 함께 인종적 차별이 교차되는 다중적 차별을 경험한다"고 했다. 결혼이주여성에게 가해지는 모든 차별의 뿌리는 '결혼중개'에서 비롯된다. 결혼이주여성들은 국제법이 정한 재생산권에 해당하는 '혼인에의 동의권' 자체에서 배제되고 있다. 결혼중개 과정에서부터 여성은 남성을 선택할 수 없고, 남성에게 질문할 수 없는 실정이다. 국제결혼알선 사이트는 여성의 외모, 나이, 질병 유무 등의 모든 기록을 공개하는 반면, 남성의 신상정보는 철저하게 보호한다. 실제 국제결혼이 이뤄지는 과정에서 남성-구매자는 오디션 프로그램의 심사위원처럼 여성을 평가해 추려낸다.

 

질문할 수도, 저항할 수도 없는 '상품'으로서의 여성은 결혼 뒤에도 인권적으로 취약할 수밖에 없다. 2003 3월 필리핀 국적의 알가나레이 비비(당시 31)의 사망사건, 2007 7, 베트남 여성 후인(당시 19)의 사망사건, 2007년 베트남 여성 씨받이 사건 등은 결혼이주여성에 대한 학대가 가족 집단의 방관과 동조에서 비롯됨을 보여준다. 시댁 식구들이 결혼이주여성에게 낙태를 강요한다든가, 시아버지가 며느리를 성폭행한다든가 하는 패륜적인 일들이 발생하는 까닭은 가족 집단이 결혼이주여성을 인간이 아닌, '비싼 돈을 주고 사온 상품'으로 바라보는 데 있다.

 

가족만의 문제는 아니다. 결혼이주여성이 가족 내부에서 '상품'으로 다뤄지는 배경에는 남성소비자 중심적인 법 체계가 존재한다. 한국의 법은 국제결혼과 관련된 사건을 '소비자보호법익'으로서만 다룬다. 남성 소비자를 보호하는 이러한 법 제도는 결혼이주여성을 판매되는 상품으로 인식한다는 점에서 성-인종차별적이다. 국제결혼 알선 과정에서 남성 소비자가 겪을 수 있는 '사기' 범죄는 과대 대표하면서, 여성이 겪는 성폭력에는 침묵하는 구조다. 법 자체가 결혼이주여성을 인간 이하로 보는 탓에 남성-소비자(를 비롯한 가족들)가 결혼 뒤에도 여성의 임신-출산 등 삶에 대한 선택권을 억압할 수 있는 셈이다.

 

현재 국제결혼중개업은 자유업으로 분류돼 있어 비윤리적, 반인권적, 불법 행위에 대해 처벌할 수 있는 근거 규정이 없는 실정이다. 국가가 여성을 상품으로 보는 '매매혼'을 합법화하고 있고, 이러한 매매혼 중개업을 자유업으로 규정하고 있기에 결혼이주여성의 재생산권이 소외되는 구조다. 결혼이주여성을 위해 경제적 자립의 조건도, 섹슈얼리티의 자유도, 임신-출산-양육을 선택할 권리도  마련하지 않은 채 '저출산-고령화 대책'이라는 이름으로 한국 사회가 부추기는 폭력들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