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과장>과 보통 사람들

Posted by 룽룽맘
<김과장>과 보통 사람들

  “죽는 사람이 아니라 죽이는 사람이 판단하는 거야.” 드라마 <김과장> 15회를 여는 대사다. 이 한 문장은 보통 사람들의 삶과 목숨조차 자신의 의사에 달려있지 않은 절망의 시대를 반영한다. 그리고 바로 그 보통 사람들이 드라마 <김과장>의 주인공이다. <김과장>은 절망적인 시대를 살아가는 사람들의 다양한 모습을 재현한다. 택배 노동자들의 투쟁 현장을 비중 있게 다루고, 주인공 김과장이 노조 위원장 조끼를 빌려 입은 채로 님을 위한 행진곡을 부르기도 한다. 엔딩을 몇 회 남겨두지 않은 현재에는 대기업이 편의점 점장을 상대로 벌이는 횡포와 이런 상황에서 두 배로 고통 받는 알바 노동자의 현실을 조명한다. 다소 과장되고 나이브한 방식이긴 하지만, <김과장>은 다양한 계급 문제를 다루고, 드라마 세계에서나마 억압 받는 사람들이 투쟁 승리를 꿈 꿀 수 있게 한다는 점에서 조금은 진보적인 드라마라고 이야기 할 수도 있지 않을까?


  하지만 택배 노동자들의 투쟁 현장이 공중파 드라마를 통해 재현되었다는 사실에 흥분한 가슴은 <김과장>에서 비춰지는 남성중심적 사고관에 짜게 식어 들어간다. 언제나처럼 드라마 내에서 주요한 역할을 맡는 인물이 남성인 것은 물론이고, 여성 등장인물의 수적 열세는 굳이 지적할 필요도 없다. 문제는 그것 이상이다. 주인공 김과장은 자신이 속한 대기업의 회장과 상무, 이사의 비리를 캐낸다는 대의 하나로 여성에 대한 편견을 재생산하고 성차별적인 현실을 등한시 한다. 지속적으로 그리고 아무런 문제의식 없이 재현되는 성희롱과 여성에 대한 편견은 드라마 <김과장>이 대표하고 싶은 보통 사람들 중에 대체 누가 포함 되었고, 누가 포함되지 않았는지 의문을 던지게 한다.


  드라마 초반에 등장하는 갈등은 주로 TQ그룹의 회계부와 경리부 사이에서 벌어진다. 회계부는 경리부가 회사 내 사소한 문제를 다룬다고 생각하고, 회계부 하위 부서로 인식한다. 이에 경리부 소속 김과장은 지속적인 회계부의 부당한 언행에 사소하지만 통쾌한 복수를 준비한다. 하지만 여기서 첫 번째 문제가 발생한다. 김과장은 특유의 사교성으로 회계부 여성 대리에게 접근하며 그의 외모에 대해 칭찬한다. 배우 누구를 닮았다, 그 배우가 러시아 배우(배우 이름도 말하지 않는다. 굳이 러시아 배우라고 한다. 대체 러시아, 특히 러시아 여성이란 한국 남성에게 무슨 의미일까!)인데 누구더라, 하는 김과장의 말에 회계부 대리는 여성 동료의 외모에 대해 언급하는 것은 성희롱에 해당한다고 지적한다. 하지만 김과장은 그럴 의도가 아니었다며 발을 뺀다. 사내에서 여성 동료의 외모에 대해 맥락 없이 지적하고도 그냥 칭찬을 하고 싶었을 뿐이었다며 그런 의도가 아니라고 변명하는 모습, 어디서 많이 본 것 같은 건 착각일까?


  그냥 이쯤에서 끝났으면 좋았을 텐데. 그러나 안타깝게도 여기서 끝나지 않는다. 두 번째 문제는 여성 청소 노동자의 재현이다. 드라마 내 청소 노동자의 등장은 어떤 의미에서 긍정적이기도 하지만, 그에게 주어진 역할이 계급 투쟁에 가담하기보다는 현존하는 아줌마의 이미지를 견고하게 하는 데 기여한다는 점에서 아주 부정적이다. 회계부 대리가 까다롭고, 외모 칭찬에 성희롱운운하는 까탈스러운 직장 여성의 이미지를 대변한다면 청소 노동자는 남자 화장실에 사람이 있어도 뻔뻔하게 드나들고, 부끄러운 줄 모르는 억센 아줌마의 이미지를 재현한다. 드라마는 현재 16회까지 진행되었지만, 청소 노동자가 보여준 것은 자신의 계급적 현실이 아닌 사회가 아줌마에 대해 생각하고 있는 편견뿐이다.


  <김과장> 내에서 여성 청소 노동자의 억척스러운 아줌마 이미지가 부정적으로만 비춰지지는 것은 아니다(물론 그게 부정적이나 긍정적이냐를 떠나 편견이라는 점에서 이미 문제적이지만). 그의 뻔뻔함은 때론 회사 재무이사를 엿 먹이는 데 효과적으로 사용되기도 한다. 재무이사에게 중요한 스케쥴이 있던 날, 청소 노동자는 김과장과 짜고 일부러 빨간 페인트 칠을 한 나무 판넬을 들고 회사 로비를 돌아다닌다. 그러던 와중에 우연인 척 재무이사와 부딪히고 이사는 두 손바닥에 빨간 페인트를 묻히게 된다. 이사는 화가 났지만 청소 노동자는 대충 미안하다고 마무리 하며 자리를 뜬다. 문제는 이 다음에 등장하는 몸매 좋은 여성이다. 몸에 딱 달라 붙는 하얀 원피스를 입은 여성이 엉덩이에 빨간 손바닥 자국을 묻히고 재무이사에게 우연인 척 달려든다. 그리고 소리 지른다. 이 사람이 내 엉덩이를 만졌다며.


  이 모든 해프닝은 김과장이 재무이사가 이사회에 참석하지 못하기 위해 일부러 계획한 것이다. 썩어빠진 이사가 TQ리테일이라는 그룹 내 자회사의 대표가 되는 것을 막기 위해서였다. 하지만 김과장이 벌인 해프닝을 보고 웃어만 넘길 수 없는 이유가 있다. 재무이사가 자신의 엉덩이를 만지지도 않았는데 만졌다고 우기며 사람들의 이목을 끄는 타이트한 원피스차림의 여성 때문이다. 계속 이사를 질책하는 여성의 태도에 이사가 그런 적 없다며 화를 내자 여성은 이제 자신에게 소리도 지른다며 주변 사람들에게 더 애절하게 호소한다. 회사 로비에 등장한, 소위 말하는 섹시한몸매에 딱 달라 붙는 원피스를 입은 여성, 그리고 그 여성이 한 남성에게 그가 하지도 않은 성추행을 빌미로 사람들의 이목을 끈다? 사람들은 이 장면을 보고 무엇을 떠올릴까? 다름 아닌 꽃뱀의 이미지 아닐까?


  직장 내 까탈스러운 여성 대리, 뻔뻔하고 억척스러운 여성 청소 노동자 그리고 갑자기 등장해서 구라로 재무이사 엿 먹이는 꽃뱀 이미지의 여성. <김과장>에서 계속되는 여성에 대한 편견과 성차별적 현실에 대한 무지는 20대 초반의 편의점 여성 알바 노동자가 자신의 입 주변에 왜 멍이 들었는지 이야기하는 순간에 화룡점정을 찍는다. 그는 계속해서 임금을 받지 못해 편의점 알바 외에 노래방 전단지 돌리는 알바도 하게 되었다며 이야기를 시작한다. 전단지를 돌리던 도중 그는 술에 취한 남성 둘을 만났고, 그 남성들은 노래방전단지를 돌리는 여성 노동자에게(러시아 다음으로 질문인데, 한국 남성에게 노래방은 또 무슨 의미인가!) 같이 놀자며 성추행을 시도한다.


  여성 알바 노동자는 그때의 몸싸움 때문에 얼굴에 멍이 생겼다고 이야기 하면서, 그때의 문제를 어른인 사람이 나이 어린나에게 벌인 폭력이라고 주장한다. 어쩌면 크게 틀린 이야기가 아닐 지도 모른다. 새파랗게 어려 보이는 외모가 그 남성들이 더 쉽게 성추행을 시도한 이유가 되었을 수도 있다. 하지만 만약 그 여성이 서른이었다면, 마흔이었다면 똑같은 희롱과 추행을 당하지 않았을까? 그 상황에서 성추행이 벌어진 근본적인 이유는 분명 성별 위계에 있지만 드라마 <김과장>은 성별 위계의 자도 꺼내지 않는다. 그저 나쁜 어른과 좋은 어른이라는 무책임한 이분법으로 문제를 뭉뚱그릴 뿐이다.


  드라마 <김과장>이 구성하고 있는 여성의 이미지는 다분히 문제적이다. 게다가 성추행의 원인을 제대로 파악하지 못하는 장면은 여전히 성차별적인 현실에 대해 제작진이 얼마나 무지한지 짐작하게끔 한다. 이 무지함은 김과장으로 대표되는 보통 사람의 범주에서 누군가를 제외시키는 이유가 되고, 보통 사람들의 <김과장>에 허점을 남긴다. 우리는 <김과장>이 제시하고 있는 보통 사람들의 삶에 공감하는 동시에, 또 누군가는 김과장조차 될 수 없는 현실을 잊어서는 안 된다. 세상에 가능한 모든 보통 사람들을 다 담기엔 <김과장>은 고정된 성별 위계와 편견을 제시하고 있지 않은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