왜냐고 묻는다면 - 강남역 여성살해 사건 1주기에 부쳐

Posted by 섹스스타
왜냐고 묻는다면 - 강남역 여성살해 사건 1주기에 부쳐

 

왜냐고 묻는다면 - 강남역 여성살해 사건 1주기에 부쳐 

 

  공연히 사람이 죽어나가는 한국사회에서 나는 또 하나의 죽음을 경험했다. 누군가는 ‘사람이 얼마나 많이 죽는데’ 하며 핀잔을 뒀다. 맞는 말이다. 모욕적일 만큼 짧은 단어로 죽음을 정의내린 경우를 나는 수없이 봐왔기 때문이다. 초코파이를 먹다가 죽고, 깔려 죽고, 이불자락에 미끄러져서 죽고, 배가 가라앉아 죽고, 아무도 모르게 사람이 죽어 나갔다. 미디어에서 접하는 죽음과 보이지 않는 죽음은 간결하고 잘 정돈되어 있었다. 쉬이 잊혀졌다. 반대로 잊혀지지 않는 죽음은 대게 지인의 죽음이었다. 부재를 인정하지 않는 과정이었다. 잠시 멀리 떨어져 있는 거야, 라고 생각하다보면 이상하고 울렁거리는 감정에서 자유로웠다. 

  강남역 10번 출구에서 겪은 죽음은 간결하지 않게 내 일상에 들어왔다. 낯선 그녀의 죽음은 멀리 떨어져 있다가도 밤길에 찾아오고, 혼자 있는 집에 찾아오고, 자다가, 뜬금없이, 예고없이 찾아왔다. 당시 나의 남성 애인은 “너무 화가 나는 일이지만, ‘남성들 다 재기해’라니 이건 심한거 같아. 난 잠재적 가해자가 아니야” 라며 나를 나무랐다. 도대체 사람이 죽은 일보다 심한게 뭐가 있을까. 또 그는 ‘만약에’를 들이밀었다. “여성이라 죽었다는 건 억지 같아, 만약 장미란 같은 여성이었어도 죽였을까?” 도대체 뭐가 못마땅하여 이미 죽은 여성을 지워버리고 다른 여성 살해까지 가정하는 걸까. 그 만약이 나였다면? 그 만약이 성별만 바꾼 당신이라면. 

  1년이 지났다. 지난 1년 동안 나는 지금껏 겪어보지 못한 예민한 감정들을 겪었다. 피해라고 인식하지 못했던 것들이 불편해졌고 자주 이마를 짚었다. 잊히겠지, 그만하면 되겠지 했던 생각들은 시간이 갈수록 점점 진해졌다. 그때 처음으로 페미니즘 서적을 샀다. 페미니즘을 일부 여성이 하는 사회운동이라고 생각했던 나는 자연스럽게 페미니스트가 됐다. 

  같이 공부하며 친하게 지냈던 남성은 나에게 왜(불온서적을 말할 때의 뉘앙스였다) 공부하냐고 조심스럽게 물어봤다. 나는 자연스러운 일이라고 했다. 네가 아르바이트 하면서 겪은 열정페이에, 우리가 자본주의 체제에 살면서 느낀 분노에 함께 공부했던 것과 마찬가지라고 했다. 나는 알고 있었다. 우리가 함께 노동이나 체제문제를 공부했던 것처럼 페미니즘을 같이 공부하는 것은 어렵겠다는 것을. 실제로 그는 “그래 적당히 알아서 해..”라며 말을 흐렸다. 

  왜냐고 물을 수 있음은 권력이다. 왜냐고 묻는 당신에게는 해당사항이 없다는 신호. 합리적인 이유가 있다면 들어주겠다는 시혜적인 태도. 남성들이 너무 당연하게 누려왔던 것들이 나에게는 없는데. 너에게 당연한 것이 나에게 없다는 것을 너는 이해하지 못하니 내게 이유를 찾는다. 오늘 강남역에서는 여성들이 마스크를 벗어 던지며 침묵하지 않고 여기서 세상을 바꾸겠다고 외쳤다. “왜 그런 운동을 하는지”는 스스로에게 물어볼 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