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나리자 스마일: 다양하게 사유하기

Posted by 룽룽맘
모나리자 스마일: 다양하게 사유하기

 

I. 널 자유롭게 할 거들이라! 대체 무슨 뜻인데, 이게?

모나리자 스마일은 누가 보아도 페미니즘과 연관이 있다고 생각할 만큼 그 색깔을 강하게 드러내고 있는 영화다. 짧게 간추리자면 캐서린 왓슨(줄리아 로버츠 분)이 웰슬리 대학 미술사 교수로 부임한 후 그만의 급진적인 사상으로 웰슬리 대학의 보수적인 분위기에 균열을 일으킨다는 이야기이다. 주인공 캐서린은 첫 수업을 하는 순간부터 남다른 가치관을 가감 없이 드러낸다. 지금까지 권위적인 비평가들의 해석에 따라 미술사를 공부했던 웰슬리의 학생들은 캐서린의 파괴적인 교수 방식에 놀란다. 캐서린이 웰슬리의 다른 교수들과 차별되는 지점은 이 뿐만이 아니다. 캐서린은 성역할과 섹슈얼리티, 결혼과 연애에 관한 당대의 전통적인 사고 방식을 거부하는 인물이다.

모나리자 스마일은 성역할이 답답하다고 느꼈던 모든 여성이 통쾌하다고 느낄만한 많은 장면을 포함하고 있다. 특히 당시 거들 광고를 학생들에게 보여주며 널 자유롭게 할 거들이라! 대체 무슨 뜻인데, 이게?”하고 소리치는 캐서린의 모습은 영화가 말하고자 하는 많은 것들을 함축하고 있다. 하지만 이 영화가 진짜 매력적인 이유는 거들을 벗으라는 메시지가 영화의 전부가 아니라는 사실에 있다. 만약 이 영화가 모두가 페미니즘을 만나서 단 한 순간에 행복해졌어요, 랄랄라~”라는 식이었다면 이 화면을 할애하면서 소개하지 않았을 거다. 오히려 이 영화의 방점은 페미니즘이 언제나 반드시 여성의 친구라는 식의 선언이거나 이것 아니면 저것을 선택해야만 한다는 이분법적 사고 체계가 아니라는 점을 분명히 한다는 데 있다.

II. 넌 더러워.

베티 워렌(커스틴 던스트 분)은 잘나가는 집안에서 자란 금수저이다. 베티는 누구보다 웰슬리의 보수적인 가치관을 잘 체현하고 있는 여성으로, 대학 졸업 후 좋은 집안과 학력을 가진 남편과 결혼하는 것이 그녀의 최대 목표다. 그러나 무의식 중에 자신의 억압된 현실을 알고 있는 것인지 그녀의 성격은 누구보다 날카롭고 히스테릭하다. 마치 '내가 이렇게 억눌리고 사니까 당신들 모두 그래야 해'라고 말하는 듯이 말이다. 그리고 그녀의 피해의식과 히스테리는 자신을 가두어두는 어머니나 남편이 아닌 만만한친구들에게 쏠린다.

베티는 친구인 코니 베이커(지니퍼 굿윈 분)에게 그녀가 남자에게 사랑 받을만하지 않다는 식으로 자존감을 깎아 내리거나, 지젤 레비(매기 질렌할 분)의 자유분방한 성생활을 근거로 그녀를 더러운 여자로 취급하기도 한다. 다시 말해 베티는 자신의 억업된 현실과 배배 꼬인 자아를 친구, 특히 여자를 혐오하는 방식으로 풀어내는 인물인 것이다. 당연한 전개겠지만 영화는 이런 베티조차 자신을 옭아매던 세계를 인지하고 그곳에서 벗어나게 만든다. 아니, 그저 벗어나는 것 정도가 아니라 영화 속에서 가장 드라마틱한 변화를 만들어내는 인물이다. 여기까지는 좀 지루한 이야기일지도 모르겠다. 남편의 외도를 알면서도 눈 감아주던 베티는 모른 척 하기가 불가능 해지자 참을 수 없는 분노를 상관 없는 지젤에게 퍼붓는다. 하지만 지젤은 모든 것을 다 안다는 듯이 악마가 된 베티를 꽉 껴안고, 발악하던 베티는 결국 진짜 마음을 이야기 한다.

남편이 날 원하지 않아, 나랑 자려고 하지 않아.”

지젤의 품에서 베티는 사회가 제시하는 이상에 자신을 맞추어 살았지만 결국 그 모든 것이 부질 없었음을 고백한다. 영화는 이 장면을 통해 가부장제가 제시하는 이상적인 이미지에 맞추어 살아온 여성이 현실에서 어떤 모순을 겪고 미쳐가는지를 잘 보여주고 있다. 그러나 스스로를 억압하다 못해 미쳐버린 여성이 다른 여성에게 해를 가하는 것으로 끝을 맺지 않는다. 오히려 베티의 여성혐오가 최악으로 치닫는 장면을 가장 큰 전환의 계기로 삼는다.

결국 베티는 남편과 이혼하고 새 삶을 찾아 가지만 영화가 베티의 변화를 보여주는 방식은 결코 편안하지만도, 유쾌하지만도 않다. 오히려 남편과의 결혼 생활이 자신에게 주어진 역할이라고 애써 믿던 과거의 모습이 차라리 행복해 보이는 순간도 있을 정도다. 그녀가 캐서린을 만나고, 페미니즘을 알게 되어 걷게 되는 당장의 길은 행복보다는 갈등과 힘든 일들로만 가득 차 있는 것 같다. 그러나 영화는 그런 불편함조차 베티가 한 여성, 개인으로서 자유를 찾아가는 서사의 한 부분으로 포용한다.

III. 가정주부가 되길 선택하면, 멍청한 건가?

조안(줄라이 스타일스)은 웰슬리에서 가장 똑똑한 학생으로 결혼과 로스쿨 진학 사이에서 갈등하는 인물이다. 캐서린은 그의 총명함을 알아보고 로스쿨에 원서 쓸 것을 제안하지만, 조안은 결국 결혼해 남편을 따라가기를 선택한다. 조안이 자신의 권유대로 로스쿨에 지원하지 않았다는 사실을 알게 된 캐서린은 곧장 조안의 집으로 찾아가 결혼해 이사를 가더라도 다닐 수 있는 로스쿨을 추천하고, 그런 캐서린에게 조안은 자신이 결혼을 '선택'했다고 선언한다. 가정주부가 되기를 선택했다는 조안의 말을 듣고 캐서린은 실망한 표정을 숨기지 못한다. 조안은 그런 캐서린에게 선생님 같은 분에게는 가정주부가 된다는 건 영혼을 파는 것이지 않냐며 그를 비난한다.

캐서린을 향해 속사포처럼 쏟아내는 조안의 비난은 어쩌면 많은 페미니스트들에게 해당하는 이야기일지도 모른다. 스스로 페미니스트라고 선언하는 많은 이들도 종종 단지 가정주부이기를 선택했다는 이유만으로 그녀의 삶을 평가 절하하거나 모든 미래를 잃어버린 것처럼 재단해버리곤 한다. 물론 가정주부의 현실이 대부분 어떤 방식으로 흘러가는지를 아는 사람이라면 그 마음도 이해 못하는 바는 아닐 것이다. 하지만 영화는 조안과 캐서린의 문제가 그와는 다른 곳에 있음을 다음의 대사를 통해 전달한다.

전 제가 무슨 일을 하고 있는지 정확히 알고 있고, 이 일은 절 덜 똑똑하게 만들지 않아요.”

가정주부의 현실을 파악하거나, 가사 노동의 사회적 가치에 대해 논하는 일을 중요하다. 하지만 한 여성이 가정주부가 되기를 선택하느냐, 마느냐 하는 문제는 전자와 조금 다른 이야기일 수 있다. 자신의 선택이 무엇인지 정확히 알고, 이것을 선택함으로써 내가 덜 똑똑해지는 것이 아니라는 조안의 주장은 캐서린과 조안의 갈등이 어느 지점에 존재하는지 정확하게 지적하고 있다. 문제는 조안이 가정을 이루길 원하며, 가정주부가 되기를 선택했고, 캐서린이 조안의 선택을 존중할 생각이 전혀 없다는 데 있는 것이다.

페미니스트는 모든 여성이 가정주부가 되지 못하도록 종용하는 사람이 아니다. 그렇다고 모두가 가정주부가 되라고 이야기 하는 사람은 더욱 아니다. 문제는 이것을 선택하느냐, 저것을 선택하느냐와 같은 이분법을 넘어선 곳에 있다. 물론 우리가 사는 사회 구조는 개인만의 선택이 존재하기 힘들게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스스로 '선택'하고 자신이 하고 있는 일이 무엇인지 정확히 인지하며, 그것이 자신을 덜 똑똑하게 만드는 것이 전혀 아님을 아는 것이 페미니스트가 지향해야 하는 바가 아닐까? 쉽게 말해, 가정주부가 되는 일을 혐오하느냐 하지 않느냐를 넘어서 각각의 여성이 최대한 스스로의 선택을 존중할 수 있도록 하는 것이 영화가 지향하는 페미니즘인 것이다.

IV. 페미니즘 혹은 반-페미니즘? 미묘한 이분법의 경계.

           페미니스트 스스로를 포함한 우리 사회의 많은 사람들이 페미니즘에 대해 가지고 있는 편견이나 오해는 아주 다양하다. ‘페미니즘적이라고 평가될 수 있는 길 –‘언제나 정치적으로 올바르게 행동해야 한다’, ‘반드시 비혼이어야 한다혹은 페미니스트는 화장과 같은 여성스러운 행동은 하지 않는다와 같은은 정해져 있다거나 페미니즘이 모든 여성들에게 반드시 그리고 언제나 행복과 편안함을 보장할 것이라는 믿음이 바로 그것이다. 이와 같은 오해들은 페미니즘을 유연하고 해방적인 가치관이 아닌, 이분법적이고 결정적인 장소에 가두어 둔다. 그리고 그 장소는 자유와 평등보다는 또 다른 법과 위계를 만들어내는 곳에 가깝다.

           베티가 트로피 와이프로서의 삶을 버리고 이혼을 결정하기까지의 모습은 페미니스트가 되는 과정이 반드시 정치적으로 올바른 것만을 내포하거나 천사가 되는 길이 결코 아니라는 사실을 증명한다. 지금까지 안고 살았던 세계관을 변화시킨다는 것은 끝없는 자기혐오, 자기기만을 수반하고 베티는 다른 여성에게 화풀이를 하는 것으로 자신의 내적 갈등을 풀어내기도 한다. 변화하는 베티의 모습은 독립적인 여성이 되는 것 혹은 페미니스트가 되는 것이 언제나 행복하고 편안한 언어가 아닐 수 있다는 사실을 보여준다. 캐서린을 만나 베티의 이상적인 세계가 무너지는 것처럼 페미니즘에 조우한다는 것은 가장 안전했던 세계가 무너지는 경험일 수 있다. 하지만 영화 속 베티에겐 평탄하지 못한 그 길조차 하나의 과정이며, 삶의 일부가 된다. 조안의 선택 역시 페미니즘의 길이 언제나 정해져 있는 것이 아니라는 걸 깨우치게 한다. 영화의 시선은 조안이 가정주부가 되는 것이 페미니즘적이냐 반-페미니즘적이냐를 논하기를 바라지 않는다. 조안 스스로가 자신의 선택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는지, 얼마나 확신을 하고 있는지가 중요한 것이다.

 

모나리자 스마일은 페미니즘의 방향이, 페미니스트가 걸어야 하는 길이 언제나 하나가 아님을 보여준다. 차마 다 소개하지는 못했지만, 영화 속에는 베티와 조안의 이야기를 넘어선 더 복잡하고 흥미로운 에피소드들이 등장한다. 그리고 모나리자 스마일은 등장인물들의 다양한 배경과 성격만큼, 다채로운 방식으로 그들의 고민과 서로 다른 방식의 삶의 모습을 보여준다. 당신과 나의 거리만큼, 우리의 차이만큼 다양한 페미니즘을 사유할 수 있게 하는 것, 그 지점이 바로 이 영화가 매력적인 이유다